안전톡톡

'트라우마'가 '트라우마'가 되지 않으려면? 서로의 고통을 마주한 방법

2025.11.06 (13:29)

KBS LIFE <재난안전119> (2025.11.3.) [안전톡톡] 코너에서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위원장인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출연해 정신건강 문제와 트라우마 극복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이 20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현실 속에서 젊은 층의 고립 문제와 정신건강 취약성을 진단하며, 교사, 소방관, 연예인 등 직업군별로 겪는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조명하고, 지연성 PTSD를 비롯한 트라우마의 복잡한 양상과 뇌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합니다. 또, 정신의학과 진료에 대한 편견 해소와 직장 내 패스트 트랙 시스템 마련 및 마인드런 페스티벌과 같은 사회적 활동을 통한 정신건강 증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사회적 인식과 청년 정신건강 문제

 

정신건강 문제는 진료실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에, 우리 사회가 트라우마와 마음 건강 민감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아직도 정신건강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사회적으로 많이 존재하기에, 해외 선진국처럼 국가나 공공에서 정신건강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젊은 층의 스트레스와 자원 부족]

우리나라는 20년째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젊은 층의 자살률이 높아져서 심각한 걱정거리이다. 최근 5~10년 사이에 10대, 20대 젊은 층의 정신과 방문이 크게 늘어났다는 특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비교적 경미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고립 청년 문제의 심각성]

20대 중에는 고립 청년이 많으며, 이는 핵가족 속에서 부모 중 한 명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족이 붕괴하면서 고립되어 살게 되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심리적 혹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받을 만한 사회적 자원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 결과, 아주 가벼운 정신건강 문제로도 아주 심각한 상태까지 진행이 빠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중독 문제와의 연관성]

10대, 20대 젊은 층 중에 마약이나 도박, 인터넷 등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즐길 거리가 많이 부족하고,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자원도 많이 부족한 현실과 연관이 깊다.

 

 

2. 마음건강 인식 제고 노력 (마음건강 톡톡 페스티벌)

 

[내 친소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컨셉의 취지]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개최한 ‘마음건강 톡톡 페스티벌’의 컨셉인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내친소) 는 과거 유행했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정신건강 문제가 진료실 밖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환자와 치료자가 함께 친구가 되어 진료실 밖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함으로써 사회적 인식을 높이자는 취지로 2024년에 처음으로 시작된 행사이다.

 

[특수 직업군과의 연대]

올해 토크쇼는 교사, 소방관, 연예인 등 특수하게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더 겪는 이들과 함께, 진료실 밖에서 어떻게 서로를 도울 수 있을지를 방법을 찾기 위해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전문가가 진료실을 벗어나서도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범 사례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3. 고위험 직업군의 트라우마와 지원책

 

3.1. 교사의 감정 노동 및 스트레스

 

최근 가장 많이 늘어난 환자의 직업군 중의 하나가 교사이다. 공무원도 많이 늘어났지만, 교사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교사는 이전과는 다른 다양한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소위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같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기보다는 ‘소비자와 판매자의 관계’처럼 변하는 느낌이 있다. 교사의 말 한마디나 태도 하나하나에 대해서 컴플레인을 받기도 하고, 이 일들로 인해 교사가 받는 감정적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다.

 

3.2. 소방관의 재난 현장 트라우마

 

소방관은 수많은 재난 현장에 직업적으로 출동하여, 일반인이 TV로만 봐도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현장을 매번 보고 경험한다. 이들은 강하니까 트라우마 반응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왔지만, 사실 이들이야말로 재난과 심리적 외상에 계속 노출되었으며, 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흡사 5분 대기조와 같다.

 

소방관은 직업적으로 트라우마에 대한 감정 반응을 억누르면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억압된 감정 기억이 강하게 남아 시간이 지난 후에 엉뚱한 상황에서 표출되는 지연된 스트레스 반응이나 트라우마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로 인해 자기가 일을 다 하고 있는데도 왠지 짜증이 많아지고 화를 많이 내게 되며, 사소한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쉽게 생각해 버림으로써 가족 관계나 인간관계가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구급대원처럼, 심폐소생술을 했던 현장의 사이렌이 환청처럼 들려오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의 색깔이 진해진다는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렇게 참사 이후 3년이 지났음에도 고통받는 소방관이 많다.

 

3.3. 연예인의 정신 의료 소외 계층화

 

연예인은 화려한 면만 보이지만, 어떤 전문가들은 연예인이야말로 정신 의료의 소외 계층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진료 환경에서 연예인이 프라이빗한 조건에서 진료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연예인은 정신건강 문제를 쉽게 숨기는 경우가 많으며, 과도한 대중의 관심을 받다 보니 조금만 실수해도 댓글이나 사회적 비난에 노출되면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공황을 겪기도 하며, 사회적 비난에 취약하여 어디 가서 얘기도 못 하고 힘들어하며, 오히려 치료받기 어려워한다.

 

3.4. 직업 활동 내 시스템 마련

 

교사나 연예인 같은 직종은 교육 환경의 변화와 SNS 확산 때문에 외상적 사건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으며, 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이들을 언제든 보통 사람들보다 더 쉽고 빠르게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필요하면 진료받을 수 있는 패스트 트랙 같은 시스템이 해당 직역 및 직장 현장 안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재난이나 대형 참사에 투입되는 소방관은 업무 특성상 트라우마 스트레스가 극심하므로, 근무 시간에 휴식을 포함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이 직업 활동 자체가 기본적으로 트라우마 위험이 높기 때문에, 감정적 곤란을 회복하는 것이 업무 프로그램 안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비슷한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동료들이므로, 동료 상담이나 동료 지원과 같은 동료들이 치유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4. 트라우마와 PTSD의 정의 및 증상

 

4.1.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의 근본적 차이 

 

스트레스는 직장 상사의 괴롭힘처럼 일상적으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압박감이나 부담감을 말하며,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을 유발한다. 반면, 트라우마는 갑작스럽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의 큰 충격이 올 때를 말하며, 심리적 외상이다. 

 

나아가 트라우마와 관련된 감정과 스트레스의 정도가 너무 커서 오랫동안 지속이 되면서 다양한 회피 증상을 나타낼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한다.

 

트라우마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노출되면, 사건 자체만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과 관련된 감정이 그대로 저장된다. 사건은 잊힐 수 있지만,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남아 그 사람의 시간을 그 당시로 되돌려 버리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스트레스는 쉬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평소에 하던 좋은 일들을 함으로써 쉽게 풀릴 수 있지만, PTSD는 적절하게 다뤄 주지 않으면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4.2. 지연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지연성 PTSD)

 

일반적으로 트라우마 반응은 6개월 이내에 일어나게 되며, 초반 2~3달 사이에 심각한 증상(예민, 기억 떠오름, 집중력 저하, 죄책감, 분노)이 나타나는 것을 급성 PTSD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지연성 PTSD는 사건으로부터 6개월 이상 지나서 발현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다. 직업적이나 성격적으로 감정 반응을 억압하는 경우, 혹은 바쁘고 수습하느라 감정을 바라볼 시간적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경우에 오히려 더 지연된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지연되다 보면 오히려 현재 일과 상관없는 사소한 자극이나 아주 사소하게 지난 트라우마랑 연결될 수 있는 자극에 의해 공포 반응이나 불안 반응이 올라오게 된다. 지연성 PTSD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그것을 PTSD라고 연결 짓지 못하고 놓칠 수가 있다. 또한 "사건이 지났는데 왜 너 아직도 이러고 있어"라는 시선과 같이 주변에서 공감받기 어렵기에 증상이 억압될 수 있다. 이가 지속되어 치료받지 못하면 더욱더 심각해지며, 자살 사고가 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6개월, 1년, 2년이 지나더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4.3. 간접 트라우마 경험

 

비행기 사고와 같은 큰 사회적 재난이 있을 때 뉴스를 본 일반 국민도 간접 트라우마 경험을 할 수 있으며, PTSD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낸다. 이들은 너무 끔찍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감정적 어려움을 느끼지만, 일상이 안 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비행기 이용과 같은 특정 상황에서 부담이나 제한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상담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자연적인 것인지 병적인 것인지 확인받고 해소 노력을 찾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5. 트라우마가 뇌에 미치는 영향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면 마치 어제 사고가 난 것과 같은 트라우마 반응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로 인해 뇌에서는 공포 감정을 저장하는 편도가 훨씬 더 과하게 활성화되며, 공포 반응을 억제해야 하는 전두엽의 기능은 떨어지는 반응이 나타난다.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의 경우, PTSD가 있는 환자에게서는 그 기능뿐만 아니라 부피 자체가 작아지게 된다. 해마의 기능이 떨어지게 되면 현재의 즐거운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반면, 과거의 트라우마 기억들이 계속해서 재연되면서 벗어날 수 없는 병적인 상태가 지속된다.

 

 

6. 트라우마 치료의 필요 시점 및 사회적 분위기

 

병원에 꼭 가야 하는 경우는 트라우마의 정도와 관계없이 일상생활 기능의 문제가 생길 때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두세 번 기억이 재연되고 공포감이 느껴지지만 일상생활 복귀를 한다면 괜찮을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트라우마 관련 기억과 감정이 지속되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지장이 생기면 바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악몽이 심해서 잠을 못 자거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주의 집중력이 떨어져서 일을 하지 못 하거나, 트라우마 기억 때문에 대인 기피나 활동에 대한 기피가 심해서 전체적으로 기력이 떨어질 때 반드시 전문적인 치료를 찾아야 한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병원을 간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등의 반응을 보이거나 정신과에 간다고 하는 것에 대한 편견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환자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음건강은 그 사람의 의지가 나약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회복하고 싶다’라고 하는 의지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물어봐 주고 적극 권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7. 마인드런 페스티벌, 달리기와 마음의 건강

 

마인드런은 '마음으로 달린다', '마음을 위해 달린다'는 의미가 있으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의료진들이 힘들었을 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자신들의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을 챙기기 위해 '일단 뛰자'라고 시작한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마인드런 페스티벌은 '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는 슬로건을 가지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 KBSN, 푸른나무 재단, 아침편지 재단이 함께 주최하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달리기 행사이다. 행사는 11월 16일 일요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 경정공원에서 5km와 10km 두 코스로 펼쳐진다. 이 행사는 단순히 기록이나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건강, 정신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 및 상담 부스가 마련되며, 심신을 안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버스도 동원되고, 전문가 단체에서 부스를 설치해 정보 제공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연예인의 공연도 준비되어 있어 볼거리와 즐길거리, 체험 거리가 많은 정신건강 특화 달리기 행사이다. 이해국 교수는 마인드런이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과 정신건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의 회복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회적 메시지도 함께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달리기의 정신건강 효과]

달리기는 몸을 쓰는 활동이며,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의미인 명상과 연결되어 있어, '움직이는 명상' 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달리기를 함으로써 실제로 정신건강에 좋은 호르몬인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 같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며, 스트레스 물질인 코르티솔이 감소하는 효과도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아울러 햇볕을 쬐고 몸을 움직임으로써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불면증 같은 증상도 좋아질 수 있기에, 달리기는 정신건강에 가장 좋은 신체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8. 30초 안전 챌린지

 

멈추고 마주하자: 잠시 일상을 멈추고 자신의 마음을 살필 여유를 갖자.


연결하고 요청하자: 혼자 견디려 하지 말고 주변의 누구든, 무엇이든 연결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함께 움직이자: 스트레스는 저절로 없어지지 않으므로, 몸을 움직이는 것부터 함께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