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13층에서 불이 나 80대 남성이 숨지고, 주민 수십 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지난 4월에도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민 6명이 가까스로 구조됐는데요.
아파트 화재에서 가장 큰 위험은 불길보다 빠르게 번지는‘연기와 유독가스’입니다.
연기가 마치 굴뚝처럼 계단을 타고 건물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최근 아파트 화재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 10명 가운데 4명은 자신의 집이 아닌 다른 집 화재로 대피하다 피해를 입었습니다.
[박세왕/서울소방학교 소방교육훈련센터 소방교 : "실제 화재 현장을 나가 보면 대피 중에 발생하는 사상자가 매우 많습니다. 열과 연기가 복도와 계단을 통해서 빠르게 확산하기 때문인데요.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는 만큼 오히려 집 안에 머무는 것이 좀 더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피는 언제 해야 할까.
먼저 내 집에서 불이 났고, 현관 쪽으로 불길이나 연기가 번지지 않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대피해야 합니다.
이때 현관문은 반드시 닫고 나와야 하는데요.
[박혜영/서울 은평소방서 소방장 : "현관문을 열어둔 채로 대피하면 복도에서 유입되는 공기가 불길을 키워서 순식간에 화재가 확대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연기입니다. 실제 화재 사망 원인 대부분은 화상이 아니라 유독가스 흡입입니다. 문을 열어두면 연기가 복도와 다른 세대로 빠르게 퍼지게 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우리 집으로 불길이나 연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대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집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는데요.
다만, 연기가 우리 집 안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복도와 계단의 상태를 확인한 뒤 대피가 가능하다면 즉시 이동해야 하는데요.
[박혜영/서울 은평소방서 소방장 : "화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내가 나가는 길에 연기가 있는지입니다. 문을 아주 조금만 열어서 복도에 연기가 없거나 시야 확보가 가능한 경우 신속하게 밖으로 대피하는 것이 맞습니다. 복도에 검은 연기가 가득한 경우 절대로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문틈을 막아 연기 유입을 차단한 뒤 창문이나 베란다 쪽으로 이동해서 구조를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밖으로 대피하기 어렵다면 집 안에 설치된 피난 시설을 활용해야 합니다.
일부 아파트 발코니에 설치된 ‘경량 칸막이’는 얇은 석고보드 재질로 만들어져 발로 차 쉽게 부순 뒤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데요.
또, 2005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에는 대부분 방화문이 설치된 별도의 ‘대피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불길과 연기를 일정 시간 막아주는 곳인 만큼, 대피 공간으로 이동했다면 곧바로 119에 구조를 요청해야 하는데요.
[강부성/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명예교수 : "설문조사를 해 보면 아파트 대피 공간에 대해서 10명 중 6명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현관으로 도망을 못 갈 때 집 안의 대피 공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 화재에 대해서 좀 더 사람이 안심하게 되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겠다 전반적인 판단을 잘할 수가 있습니다."]
화재 상황에서 무조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어디에 머물고, 어떻게 움직일지 그 순간의 판단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데요.
위기 속에서 나와 가족을 지키는 건 상황에 맞는 냉정한 판단과 철저한 대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