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가 지속하면서 아이러니하게 좋아지는 것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미세먼지입니다. 우리의 활동량이 줄고, 그로 인한 에너지 사용량이 감소하면서 부산물 중 하나인 미세먼지 농도가 줄어드는 기현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뒷전으로 밀린 정부의 미세먼지 관리 대책을 1편에서 짚어봤습니다. 2편에서는 미세먼지 관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과학적 근거인 '개수 농도'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리 정부의 미세먼지 관리 원칙은 여전히 '질량 관리' 입니다. 현재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미세먼지(10㎛ 이하)나 초미세먼지(2.5㎛ 이하) 농도는 상대적으로 커다란 먼지의 '질량'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미세먼지로 인한 주요 인체 피해는 이보다 더 작은 입자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작은 알갱이들이 공기 중에 얼마나 떠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한데, 이걸 측정하는 방법이 바로 '개수 농도'입니다. 만약 질량이 같더라도 개수 농도가 높다면, 그 말은 곧 '작은 크기의 먼지들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 작은 입자 초미세먼지, 진짜 문제는 '심뇌혈관질환'
세계보건기구(WHO)를 중심으로 전 세계는 미세먼지 등의 위험성을 계속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기오염물질에 의한 '질병 발생 기여율'도 계속 발표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미세먼지로 인한 질병 가운데 심뇌혈관질환이 전체의 50%를 웃돈다는 점입니다. 일단은 호흡기질환으로 출발하지만, 가장 큰 피해는 심뇌혈관에서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미세먼지로 인한 각종 질병의 사망 기여율(출처 : 세계보건기구)
그럼 미세먼지는 어떻게 심뇌혈관질환을 일으키는 걸까요? 핵심은 아주 작은 미세먼지입니다. 작은 먼지는 가벼워서 공기 중에 떠 있는 시간이 깁니다. 그만큼 호흡기를 통해 우리몸에 들어갈 확률이 높습니다. 또 작은 만큼 혈관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혈관으로 이동한 먼지에 대해, 우리 몸의 면역체계인 대식세포가 제거 작용을 하는데요. 제거 이후에는 염증반응의 증가로 혈액의 점도가 높아져 혈액 이동을 방해해 심·뇌혈관질환 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먼지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인체에 끼치는 치명적인 피해는 커지는 거죠.
도로변에 거주하는 아이들 폐 속 대식세포. 도로에서 가장 먼 곳에 사는 아이의 대식세포인 A에는 블랙 카본(검정색 점)이 보이지 않지만, 도로에서 가까워질수록(B~E) 블랙 카본이 많이 검출된 것을 알 수 있다.(출처 : 뉴잉글랜드의학저널, 2006년)
'개수 농도' 연구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같은 나이인 어린이들의 대식세포 안에 블랙 카본을 확대하여 사진으로 찍은 연구입니다. A부터 E까지 도로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따라 아이의 대식세포 내 블랙 카본(검댕)의 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한 내용인데요. 도로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일수록 대식세포 내 블랙 카본의 양이 많고, 도로에서 가장 먼 곳에 사는 아이의 대식세포에는 블랙 카본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 특히 경유차로부터 많이 발생하는 작은 먼지인 블랙 카본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연구 결과입니다. 따라서 개수 농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블랙 카본'과 주요 원인인 '경유차'는 건강 피해를 줄이기 위한 중요한 연구 분야입니다.
■ 경유차가 개수 농도 높이는 주범…"도로변 측정 시급"
우리 생활 속에서 가장 큰 미세먼지 배출원은 자동차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경유차 비율이 높아 앞으로 관리하려면 많은 연구 결과가 필요합니다. 경유차는 연료의 효율성과 오염물질 배출의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경유차의 어머니로 불리는 유럽에서는 유로라는 기준을 사용하고 있고, 여기에서 먼지의 규제 수준을 km당 6백억 개 이하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즉 질량이 기준인 우리나라와 달리 개수 농도라는 규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개수 농도를 측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영향을 판단하는 데에도 많은 제약이 있는 상황입니다.
일부 터널에서 측정한 자료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생활 공간이 대부분 도로와 인접한 생활권을 가진 점을 고려하면, 도로 주변의 개수 농도 측정과 이들의 건강 영향을 연구해 생활 속 건강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적용이 시급합니다. 미세먼지의 질량이 줄어드는 것이 정말로 건강 피해를 줄여주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건강 피해 줄이려면 미세먼지 '개수 농도' 관리해야"
중량이 같을 때입자 크기에 따른 미세먼지의 개수 차이(출처 : Madi P 등, 2012년)
'개수 농도'의 위험성은 우리가 판단하는 것보다 클 수 있습니다. 위의 연구는 100분의 1의 크기로 만든 먼지를 같은 질량으로 만들어 보니 개수가 무려 200만 개 이상의 숫자가 있어야 질량이 같아진다는 연구결과입니다. 우리가 '질량'으로만 미세먼지 농도를 판단한다면 미세먼지의 건강 영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겁니다.
앞에서도 강조한 대로 미세먼지의 건강피해는 질량보다는 개수에 의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를 밝히는 일은 미세먼지 정책에서 중요한 분야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수 농도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경유차 등 내연기관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할지 정부는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수소차 등 대안이 계속 나오고는 있으나 아직, 혹은 계속 사용하게 될 내연기관, 특히 경유차의 진정한 문제점은 논의를 한 바가 없는 것이 우리 미세먼지 정책의 현실입니다.
임영욱 교수
KBS 재난방송 전문위원(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부소장)